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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후기

참여자 정새싹님의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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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은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드는 순간 모두가 힘에 부치는 하루하루의 반복이었다. 이십 대 초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우울증이 생겼고, 그 우울은 별 일없이 일상을 잘 보내는 나에게 불현듯 찾아와 불안함과 두려움을 던져주고 가고는 했다. 마치 해가 쨍한 날 갑자기 내리 닥치는 소나기처럼, 우울이 언제 찾아올지 몰라 나는 늘 떨리는 마음으로 반쯤 기울어진 채 하루를 보내곤 했다.

 

언젠가 내가 누군가에게 우울을 고백했었다. 그때 들었던 말들은 “네가 우울증이라고? 오진 아니야?” 같은 나의 우울을 부정하는 말들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그래도 힘내, 우울은 누구나 걸리는 감기래”라는 다소 모호하고 추상적이며 신빙성 없는 말들, 이런 반응들이 많아지자 나는 자연스레 나의 우울을 숨겼다.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우울증 환자들, 그들은 대다수 표정이 없고 힘없이 걸어 다니며 하염없이 울기만 한다. 미디어에 표상된 그런 모습이 아닌 어쩐지 활기차 보이고 늘 말을 잘하는 나에게 우울은 없을 거라고, 그건 우울증이 아니라고 단정 짓는 사람들, 그리고 우울이 별거 아닌 것처럼 치부해버리고 쉽고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 그 앞에서 나는 어떤 소통의 단절을 느꼈던 것 같다. 우울증이라는 질환이 원인이 다양한 만큼 발현과 양상도 다양한 것을 왜 미디어나 책에서는 보여주지 않는 것일까, 이런 고민들과 생각을 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우울을 치료나 치유의 대상보다는 감춰야 하는 존재로 여기고 말았다. 그리고 그 감춤, 버리는 곳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마음속 심연, 나는 어떻게든 존재감을 드러내 나를 어둠으로 적셔버리려는 우울을 억지로 눌러 깊은 심연에 몰아두고는 했다. 그렇게 심연에 갇힌 우울이 성을 내며 제 몸을 불려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날 아침은 특별한 날도 아니고, 무슨 계기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하루 중 하나인 하루였고, 예정된 알람도 시간에 맞춰 힘차게 울렸다. 허나 나는 눈을 뜨자마자 펑펑 울어서 그 알람을 끌 여유조차 없었다. 이유가 없는 울음이기에, 휴지를 뽑아 얼굴을 적신 눈물을 닦아내면서도 나는 계속 내가 왜 울고 있는지를 몰랐다. 몇 시간을 우니 눈이 붓고 몸의 기운도 없어 가만히 침대의 이불을 끌어안고 축 쳐져 있었다. 오늘의 할 일들이나 예정된 약속들을 하나도 수행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심연에 있던 우울이 머릿속으로 들어와 말을 건넸다. “정말 이유가 없어?” 없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오늘처럼 자주 밖으로 나올 거야. 네가 날 가둔 이곳은 너무 답답해.” 우울이었다. 내게 찾아온 눈물의 원인은 우울이었다. 우울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춰둬 버린 탓에 어느새 우울은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불편한 손님 같은 우울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나는 이미 먹혀버린 것은 아닐까, 많이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아, 내가 하루를 살아가는 것을 그만두면 우울도 함께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위험한 생각이었다. 나는 내 몸에 닿는 내일의 햇살을 사랑했고, 아침 방문을 두드리며 내 이름을 불러주는 엄마를 사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자주 못 만나지만, 나의 일상을 함께 꾸려갔던 수많은 친구들과 사람들을 사랑했다. 이대로 우울이 나를 좀먹어 가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다고 이겨보겠다고, 아니면 우울과 아주 친한 친구가 되어버리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금전적인 이유로 중단된 정신과 치료, 코로나로 인해 대면 상담이 어려워져 가기 힘들어진 심리상담소, 그리고 내 맘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말하는 것에도 심리적인 힘이 들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내 우울을 말했다가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는 타인들을 보니 더욱 말하기가 꺼려진 것이다.

 

그러던 중, 온라인 고민 상담소 hi, there를 알게 되었다. COVID-19 시대에 맞춰 거리를 두고, 자가 체크와 고민 상담을 할 수 있다는 온라인 청년 고민 상담소라는 문구가 획기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보였다.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물리적인 거리감의 불편을 호소하며 자연스럽게 심리적인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곳이라고 여겨졌다. 말로는 모두 표현되지 않는 것들을 글로 적어 내려가며 글자로 형상화 된 본인의 고민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자신의 고민을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그것을 들어주고 조언해줄 마음 친구라는 고민 상담사가 있다는 것이 굉장히 든든했다.

 

원인을 알 수 없어 힘든 우울이라는 감정에 대해 고민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고민에 대한 글을 쓰고 그것을 확인하는 것, 내 심연에 있던 우울이라는 고민을 꺼내서 모니터에 적는 것만으로도 어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다. 속에서 끙끙 앓고 있던 고민을 풀어내는 것 자체에서 느껴지는 어떤 시원한 해방감과 고민 해소의 기대가 생겼다. 며칠이 지나고 마음 친구에게 답변이 왔다. 나는 당시 다소 쌀쌀한 바람이 부는 산책로를 얇은 티셔츠 하나 입고 걷고 있었는데, 답변을 읽고 나서 순간적인 온기를 느꼈다. 내 고민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주는 답변을 확인하며, 글자에도 온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답변 문장 하나하나가 따듯해서 꽁꽁 얼어 붙어있던 심연 속 우울도 조금씩 녹아 내려갔음을 느꼈다. 어떤 완전한 해결법을 제시해서 수동적으로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이 아닌, 나의 고민을 공감해주고, 일상적 안부를 물어봐 주며 내일을 응원해주는 담담하고 솔직한 답변이 훨씬 내 맘 깊이 와 닿았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던 내 심연에 한 줄기 햇빛이 되어 함께 들여다 봐주겠다는, 마음 친구라는 지원군이 생겨 내 심연 속을 마주할 용기를 얻었다.

 

심연 속을 살펴보고 우울이라는 친구를 맞닥뜨린다는 것은 지금도 무섭지만, 두렵고 떨리지만, 그럼에도 마주하겠다는 마음, 쉽게 무너지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심연을 들여다볼 때 뒤에서 응원해주고 있을 마음 친구를 떠올리며, 미래를 살아갈 희망을 노래하겠다고 생각하게 되어 행복감을 느꼈다.

 

나의 심연을 함께 들여다 봐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 밤에 잠을 자며 꾸는 꿈에 내일 아침의 행복한 나를 등장시키는 마법, 하루를 잘 살아갈 수 있게 돕는 든든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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